본문 바로가기
문학/고전운문 평설

'다산 정약용'과 '장마'

by 우리국어 2014. 3. 11.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인 정약용은 경세치용학파에 속하여 경제제도 개혁 등 궁핍한 민중의 삶을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 학자였다.
시대에 대해 상심하지 않고, 풍속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라는 말처럼 그는 민중의 삶 깊숙이 파고 들어 그들의 고충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 개선를 마련하는 데 힘쓴 지식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장마'를 소재로 한 시에서는 궁핍한 농촌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괴롭고 괴로운 비 자꾸만 내려

밝은 해 나지 않고 구름도 걷히잖네

 

보리는 싹 나고 밀은 쓰러져

돌배와 산앵두만 살쪄가는데

 

촌아이들 다 따먹으니 뼛속까지 시려온다

쓰러진 보리 그대로인데 누가 이를 알건가

 

장마(苦雨歎) - 정약용 (다산시선, 창비, 2013)

 

 

중복 지나자 못의 물이 넘치고

산비탈 천수답도 무릎까지 물이 차니

 

쟁기 있어 쓸데없고 모내기 할 수 없어

어차피 틀린 병에 인삼 녹용 써봤댔자

 

감사 공문 날아들자 군마다 안절부절

농사일 독려하기 법률처럼 하는구나

 

사또님 말을 타고 친히 들에 출두하여

집집마다 다니면서 소리치고 꾸짖으니

 

젊은 사람 달아나고 노인 나와 엎드리며

"생각건대 모내기는 이미 때가 늦었다오

 

지금 와서 모심는 건 공력만 허비할 뿐

가을에 누가 와도 낫질 구경 못하리라

 

목화밭 기장밭에 잡초가 우거져서

여덟 식구 호미 매도 하루 해가 모자란데

 

사람 사서 일하려면 새참은 먹여야지

어디 가서 쌀 한 말 구할 수 있으리오"

 

사또님 말을 세워 채찍 찾아 손에 들고

"게으른 놈 어찌 감히 안일을 꾀하는고"

 

며느리 자식 불러 모아 들일 가기 독촉하여

다섯 발 열 발마다 모 하나씩 심게 하네

 

사또님 말을 돌려 관아로 가버리자

논두렁에 다리 뻗고 쓴웃음만 날리네

 

일년 중 농가에서 가장 크게 바라는 건

벼 심어 자라면 그 열매 따 먹는 것

 

때맞춰 일하기를 비호처럼 해왔는데

그 어찌 꾸중 듣고 겁이 나야 일하리오

 

감사하오 사또님, 굶주릴까 걱정하여

친히 와서 우리들 어리석음 깨우치니

 

장마(苦雨歎 示南皐) - 정약용 (다산시선, 창비, 2013)

 <고우탄(장마)>에서는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고우탄 시남고(장마)>에서는 관리의 횡포와 백성의 어려운 처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 비판적 시선과 고단한 백성의 삶을 표현하는 날카로운 시선은 아들인 정학유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져 <농가월령가>를 쓰기에 이른다.

 

궁벽하게 사노라니 찾아오는 사람 없어

온종일 의관도 걸치지 않고 있네

 

낡은 집엔 향랑각시 떨어져 있고

황폐한 밭에는 팥꽃이 남았구나

 

병 많으니 따라서 잠마저 적어지고

글 짓는 일로써 수심을 달래보네

 

장맛비 내린대서 괴로워할 것 있나

날 맑아도 혼자서 탄식할 뿐인 것을

 

장마(久雨) - 정약용 (다산시선, 창비, 2013)

 

 비록 정약용이 농민의 궁핍한 현실 문제에 깊이 탐색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인 것이 사실이나 <구우(장마)>에서까지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는 물음표가 그려진다. 즉, <구우(장마)>의 주제를 '장마철 농촌의 궁핍한 삶'으로 볼 수 있냐는 문제가 있다. 여러 참고서에서는 이 작품을 이처럼 설명하고 있다.

 큰 맥락은 궁벽하게 사는 화자가 그 시름을 시로 풀었으나, 비로 인한 시름이 아니라 맑아도 시름할 것임을 고백하는 무기력에 빠져 있는 구도이다.  이는 궁핍한 농촌 현실에 대한 고발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지 못하는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느낀 대목이라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한 해석이라 볼 수 있다.

 그 한계의 근원은 어디냐를 더 치열하게 따진다면, '농촌의 궁핍한 현실'로 귀결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구우(장마)>에서 드러난 정서의 폭은 유배지에서 맞은 농촌의 현실을 보고 느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아닐까 한다. 그 외의 현실 상황에 대한 어떠한 묘사도 없으니 말이다.

댓글